Great Peace Story


후원자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는

큰 평화, 온전한 변화 이야기

세계 여성의 날 맞이 태화 미니 역사 사진전 "걸어서 태화 속으로"🚶🏻‍➡️

2025-03-12


세계 여성의 날 맞이 태화 미니 역사 사진전 
"걸어서 태화 속으로" 🚶🏻‍➡️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유엔이 1977년 3월 8일을 특정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하였습니다.


▲ "걸어서 태화속으로" 태화 미니 역사 사진전 전경


여성의 자립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수행해 온 태화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3월 7일부터 12일까지 역사 사진전을 개최했습니다. 태화빌딩 1층 로비에서 진행된 “걸어서 태화속으로 - 태화 미니 역사 사진전“에서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태화 역사 속 한국 여성들의 모습이 담겼습니다.


태화여자관을 세운 미국 여선교사들의 모습부터 학령기를 놓친 가난한 여성과 과부들에게 가르침을 전했던 태화여학교, 가정주부들에게 재봉을 가르쳤던 태화야벽, 남북전쟁 시 여성의 자립을 위해 운영했던 인형사업, 6.25 전쟁 후 문맹자를 위해 한글을 가르쳤던 웨슬레 구락부 그리고 현재 라오스에서 수행하고 있는 라오스 여성장애인 직업기술훈련까지 총 8편의 사진이 전시되었습니다. 함께 만나볼까요?




태화 역사 사진으로 본 한국 여성의 삶 👧🏻


태화여자관 순화궁에서 태화여자관 직원들(1926년)

1921년 일제강점기, 미국 마이어스 여선교사는 글도 모르고 배움에 굶주린 여성들을 위해
지금의 태화빌딩 자리에 ‘태화여자관’을 세웠습니다. 한국에서 전례가 없는 ‘여자관’을 설립하고
협성여자성경학원, 야학부, 재봉과, 태화여학교를 운영했습니다.



태화에서 활동하던 미국 여성 선교사들(1920년대)



태화여학교 학생과 교사들(1925)

어느 요릿집, 앳되어 보이는 기생 하나.
영 분위기를 못 맞추고 초장부터 찔찔 짜니 술맛이 날아갈 판이라.
알고 보니 아버지가 노름으로 가산을 날리고 어머니마저 도망치자
아버지 손에 이끌려 먹여주고 입혀주는 요릿집에 첫 출근을 하게 된 것.
손님으로 온 남학생이 기생에게 하는 말
“얘야, 인사동에 있는 태화여자관에 가보거라. 너같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곳이라더라”
그 학생도 태화관 영어구락부(구락부는 클럽의 음역어)에 다니면서 태화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더라.


태화여학교는 학령기를 놓친 기혼 여성이나 과부, 가난한 학생들이 다니던 소학교 과정입니다.
조선의 버림받은 여성들의 낙원. 아편하는 아버지가 아편값으로 팔아넘겨 중국 사창굴로 넘겨지기
직전, 태화 선생에 의해 몸값을 치르고 구출된 12살 소녀부터
글 한 줄 못 읽는다고 남편과 자식한테 무시 당하고 구박 받으며 한평생 살아온 60세 노인까지
많은 여인들이 모두 이곳에서 새 삶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태화야벽(太和夜碧) 간판 아래서 재봉교육을 받고 있는 초기 태화여자관 학생들(1930년대)

재봉반에서는 당시 배움에 목말라 있던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훌륭한 가정주부가 될 수 있도록 가사(家事) 교육을 진행하였습니다.



태화여학교 학생들(1935년)

“고등학교나 전문학교에 다닐 나이인데도
전혀 읽거나 쓰지 못하는 젊은 부인들을 수없이 만났습니다.
이 부인들은 자기네 남편과 실질적인 동반관계를 맺을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을 받기를 원하고 있고,
남편들도 자기네 부인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태화여학교를 개설했습니다.
영어, 일어, 한문, 산술 등 초등학교 과목에다
요리, 재봉같이 가정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 태화여자관 2대 관장 에드워즈 -


태화여자관은 성신여자대학교와 성신여자중고등학교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태화사회관 부인구락부 인형사업(1949년)

남북전쟁 시, 태화사회관(1930년대 태화여자관은 조직정비를 거쳐 태화사회관이 되었다)은
월남민들에게 경제적 자립기반을 마련해주기 위해 편물사업을 구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선 부인들이 가정에서 인형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시작했고 성공적이었습니다.
특히 미군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태화 웨슬레구락부의 수업 광경(1955년)

웨슬레구락부(구락부는 클럽의 음역어)는 6.25 전쟁 후 문맹자를 위해 한글을 비롯해
초등학교 기본 과목을 무료로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학교를 다니다 전쟁으로 중도에 그만둔 학생,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
북쪽에서 피난 내려와 경제적으로 어려워 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던 어려운 형편의 청년,
학교에 갈 기회를 놓쳐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나이든 여성들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태화 협력기관 라오스여성장애인협회(WWDA)에서 직업기술을 받고 있는 여성장애인

태화는 미국 여 선교사들이 한국의 소외된 여성을 위해 태화여자관을 세운 그 마음을 따라,
팔을 뻗어 세계로 나아갑니다. 특별히 여성 그리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중차별을 받고 있는
라오스 여성장애인들의 자립을 돕습니다.




사진전 마지막 날인 12일에는 사진전을 홍보하기 위한 해시태그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특별히 여성캐주얼 브랜드 크로커다일로 잘 알려진 패션그룹형지에서 이벤트 선물로 양말을 후원하여 행사에 의미를 더해주셨습니다. 


한 관람객은 “태화복지재단의 역사 사진을 통해 재단이 여성 자립을 위한 귀한 일들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며 “사진전을 통해 한국 역사 속 여성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어 귀한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태화복지재단 김태진 사무총장은 “사진전을 통해 여성의 자립을 위해 힘써온 재단의 역사가 널리 알려지길 소망한다”며 “태화 역사 속 한국 여성의 모습을 통해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할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해 볼까요? 🥖🌹 


▲ 세계 여성의 날 장미를 받은 시민(출처 : 게티이미지 코리아)


1908년 3월 8일 미국 1만 5천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뉴욕의 루트커스 광장에 모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때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고 외쳤는데요! 여기서 빵은 남성과 비교해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들의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뜻합니다. 


이후 1911년 유럽에서도 여성의 날 첫 행사가 개최되었고 이후 세계 각국에서 남녀 차별 철폐와 여성 지위 향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하였습니다. 이후 유엔은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7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하게 되었죠.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3월 8일 여성의 날이 되면 세계 곳곳에서 빵과 장미를 나눠주는 행사를 볼 수 있답니다! 




라오스 여성장애인과 함께하는 우리 🪡🧶


앞서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태화는 1921년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 전쟁 등 어려운 시대에서 여성들이 살아 남고, 일어서고, 자립할 수 있도록 귀한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여성을 위한 사업으로 시작한 만큼 초기 이름도 ‘태화여자관’이었지요. 1924년에는 여성계몽, 농촌계몽 등 여성 사회 운동에 앞장섰던 YWCA(여자기독교청년회)에 무상으로 태화여자관 공간을 내어주기도 했어요. 이처럼 여성의 권익 향상을 위해 힘써왔죠.


그리고 현재, 그 정신을 이어 받아 라오스 여성장애인과 함께하고 있어요. 여성, 장애인 이라는 이유로 이중 차별을 받고 있는 여성 장애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언어는 물론 재봉, 직조, 컴퓨터 등 직업 기술 훈련을 돕고 있거든요. 이에 한 해에 8명~10명의 여성장애인들이 자립하고 있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러분도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계시다면 라오스 여성장애인과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 정기후원을 신청하면 라오스 여성장애인이 직접 만든 파우치를 선물로 보내드려요! 여러분의 후원금은 여성장애인이 희망을 찾고 꿈을 키우는데 소중히 사용됩니다!



라오스 여성장애인 친구 되고 예쁜 수제 파우치도 받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