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지부 파견 직원, 그녀를 만나다!
Q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 드려요. 😊

▲2024 사례 공유 세미나에서 Prey Khpous 중학교 교장선생님과
안녕하세요? 태화복지재단 캄보디아지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나래입니다. 2022년 3월에 봉사단원으로 처음 캄보디아지부에 왔고 현재는 커뮤니케이터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올 12월에 약 3년 간의 파견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Q2. 커뮤니케이터라니 생소한데요! 커뮤니케이터는 어떤 일을 하는 걸까요? 😛
커뮤니케이터는 한국에 있는 본부와 캄보디아지부의 소통을 돕는 역할을 해요. 지부가 해외에 있다보니 본부에서 사업을 모니터링하고 운영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면 현지 사정으로 인해 일정이 변경되거나 지연될 경우 그 이유는 현지에서만 확인이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현장에서 프로그램이 계획한 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앞으로 어떤 부분에 대해서 보완이 필요한지 확인해서 본부에 전달하고 함께 논의하는 일을 합니다.
Q3. 캄보디아로 떠나기 전! 어떤 기대를 품고 갔나요?
사실 저는 2021년 봉사단에 선정되었었어요. 그러나 코로나로 파견을 나가지 못하게 되었지요. 🥲 1년의 기다림 끝에 2022년에 다시 지원해서 결국 캄보디아에 나갈 수 있었는데요, 그때 저는 드디어 현장으로 갈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2022년, 아이들과 첫 미술 수업을 마치고
Q4. 파견 생활은 기대했던 것과 같았나요?
과장을 조금 보태서 파견 생활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어요.
저는 제가 맡게 될 ‘역할’에 더 관심이 있었거든요. 이곳에서 학교-지역사회 교육복지 네트워크 사업의 성과관리를 지원하고 있어요. 정말 이 사업이 의미 있었는지, 효과가 있었는지 보여주려면 납득할만한 근거들이 필요하잖아요. 문서든, 사진이든요! 이것을 성과지표라고 하는데 저는 이 성과지표를 모으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성과지표 중에는 숫자나 수치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어요. 이게 전부가 될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 어떤 활동에 참여하는 횟수가 높다면 그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높다고 보는 거죠. 그렇다 보니 어느새 중도탈락 예방활동 참여 횟수라든지, 지역사회의 교육 참여 인원 수라든지 이런 숫자에 점점 더 신경을 쓰게 됐어요.
어느 날, 지금까지 교육 코디네이터가 활동을 몇 번 하셨는지 세어보는데 유독 한 학교의 교육 코디네이터 활동 횟수가 저조한 거예요. 저는 그게 단순히 활동에 대한 열정이나 관심이 부족해서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학교에 직접 방문해서 알게 된 사실은 그 학교에 교장선생님과 교육 코디네이터를 포함해서 교사가 고작 9명이라는 거예요. 전교생은 300명이 넘는데도 말이에요. 순간 그 역할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현장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숫자에만 매몰되었던 저를 발견했어요.
하지만 그 상황을 알고 나니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어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냐면요, 교육 코디네이터예요. 교육 코디네이터란, 지역사회와의 협력과 네트워킹을 전담하는 학교 내 핵심 수행인력인데요. 캄보디아에서는 학교사회복지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보니 교육 코디네이터 선생님들께서 처음에는 지역사회 내 자원을 발굴하거나 연계하는 것을 어려워하셨어요. 지역사회 협력의 필요성도 잘 느끼지 못하셨고요. 그러나 캄보디아지부에서 제공하는 역량강화교육을 통해 지역사회 협력의 중요성을 이해하시고부터는 적극적으로 바뀌셨어요. 예산, 인력 등 학교가 가진 자원에는 한계가 있지만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신 거예요. 한 교육 코디네이터 선생님은 교육 이후 지역 내에 어떤 자원이 있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시다가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직접 경찰서랑 보건소까지 방문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학교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학교-지역사회 교육복지 네트워크 사업이란?
학생이 겪는 어려움은 학생 개인뿐 아니라, 가정,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에 지역사회의 참여를 통해 저소득층 가정 학생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나 노후한 학교 시설환경 개선 등 학교에서 지원하기 어려운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에 접근 및 해결함으로써 학생의 교육참여기회를 증진하고 교육복지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사람들은 지역주민들이에요. 부모님께서 이혼하시고 어머니는 일을 하기 위해 태국으로 떠나시면서 혼자 살고 있는 학생이 있었어요. 비록 상황은 어렵지만 공부에 대한 열의도 높고 성적도 좋았지요. 그런데 집이랑 먼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거예요. 많은 학생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통학하는데 이 학생은 등교를 위한 차편이 없었거든요. 교육 코디네이터 선생님은 이 사실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후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온 마을에 퍼졌어요. 그 중 SNS에 글을 올려 소식을 공유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 아이에게 오토바이를 후원하고 싶다는 후원자를 만날 수 있었고, 아이는 통학에 필요한 오토바이를 선물 받았습니다. 학생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학교 혹은 그 가정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보지 않고 지역주민으로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모습은 정말 인상 깊었어요.
정답은 없지만, 파견자가 ‘내가 무언갈 해야지’, 혹은 ‘내 손으로 많은 것을 바꿔야지’ 생각하면 힘든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변화가 지속될 수 있을지도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고요. 이들이 정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들이 변화를 만드는데 함께 할 수 있도록 우리는 열심히 도와야죠. 파견 생활은 제게 그걸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어요.

▲학교시설환경 개선 공사에 대해 나누고 있는 교육 코디네이터와 학교 교사의 모습
Q5. 담당했던 업무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지역사회 후원으로 학교 화장실을 증설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캄보디아는 학교에 대한 정부예산이 크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정부지원금 만으로 학교를 운영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학교 시설환경이 노후되어 있거나 시설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더라도 개선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캄보디아지부는 학교 시설환경 개선을 위한 공사비용을 지원했어요. 비만 오면 물에 잠겨 학생들이 통학에 어려움을 겪던 학교는 통학로를 새로 깔기로 했어요. 외부로부터 학생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무너져 가는 담벼락을 허물고 튼튼한 담을 새로 짓겠다고 한 학교도 있었고요.
대신 학교의 책임의식을 고취시키고 지역사회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전체 공사비용의 10%는 학교 및 지역사회에서 분담하기로 했죠. 다행히 학교와 지역사회가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동의해주신 덕분에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담벼락을 새로 짓고 있는 모습
한 학교는 화장실 수가 부족해서 새로 화장실을 짓기로 계획했어요. 모금을 진행하는데 학부모 및 지역주민으로 구성된 학교지원위원회 분들이 정말 열성적으로 모금활동을 하셨어요. 직접 후원도 하시고 SNS를 통해 후원 홍보글을 공유하는 등 아주 적극적이셨죠. 그 결과 학교 동문들을 비롯해서 지역사회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후원에 동참하셨고, 공사비용의 약 40%를 지역사회에서 후원 받을 수 있었어요. 덕분에 처음 계획한 것보다 훨씬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깔끔한 화장실이 지어졌습니다.
처음엔 학교에 화장실이 부족한 게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이랑 무슨 상관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남학생의 경우 정 급하면 뒤뜰에 가서 볼일을 보기도 하지만 여학생들은 그마저도 어려워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집에 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 중에는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도 있어요. 사소해 보였던 이유가 사실은 사소하지 않았던 거죠. 아이들의 학습 환경에 관심이 많은 지역주민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그 결과 새로 지어진 화장실을 보는데 왠지 울컥하더라고요. 제가 이곳에서 일하면서 보람을 느낀 순간이기도 합니다.

▲학교시설공사 관련 후원 홍보글을 게재한 학교운영위원회 부위원장 SNS

▲공사가 완공된 후 화장실 사진
Q6. 캄보디아 생활이 어떤지 궁금해요!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캄보디아 사람들은 음식에 설탕을 따로 추가해서 먹을 만큼 단 음식을 좋아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캄보디아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당도를 설정할 수 있어요. 어디에서 어떤 음료를 주문하든지요! 저는 늘 50% 정도로 주문을 했었는데요, 잘 들어보니 저희 직원들은 ‘톰아다’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이게 캄보디아어로 보통이라는 뜻이래요.
그 이후로 음료를 주문할 때는 늘 당도를 ‘톰아다’로 해 달라고 주문했었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궁금해져서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톰아다는 몇 퍼센트 정도를 말하는 거냐"고 물었어요. 100퍼센트라는 거에요. 저는 너무 놀라서 "보통인데 어떻게 100퍼센트일 수 있냐"고 물으니 최대 200퍼센트까지 주문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쩐지 아메리카노를 먹는 저에게 늘 한국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다들 쓰게 먹냐고 묻더라니!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이런 순간들이 저의 파견생활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
▲카페 메뉴판 사진
또 다른 에피소드는, 제가 한식에 진심인 사람이라는 것을 파견 와서 알았어요. 익숙한 것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말라고 했건만.. 늘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잘 몰랐던 거죠.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별로 없었고 집에서 해 먹는 것도 사 먹는 것과 맛이 다르잖아요. 그렇게 한식이 그리워질 때쯤 직원들이 점심에 Korean spicy noodle을 먹으러 가자는 거에요! 음식 앞에 Korean이 붙은 것만으로도 너무 반가워서 냉큼 따라갔죠. 한국의 라면 맛을 상상하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서 첫 술을 뜬 순간 !!!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 국물은 너무 달큰했고 코 끝에 맴도는 이 묘한 향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도무지 한국 라면 맛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맛에 설명할 수 없는 괜히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앞에 Korean은 왜 붙인건지! 나중엔 그 맛에도 익숙해져서 야무지게 라임까지 뿌려 먹게 되었지만 아직도 처음 맛본 날의 충격은 잊지 못합니다. 🤣

▲정작 한국인에게는 낯선 Korean spicy noodle
Q7. 봉사단원 기간을 포함해서 캄보디아지부에 3년 정도를 계셨잖아요.
오랫동안 캄보디아에 머물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요?
오래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힘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처음 올 때까지만 해도 제가 봉사단원 기간을 연장하게 될지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제가 캄보디아에 3년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부끄럽지만 엄청난 소명 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그러나 저는 이곳 사람들이 좋았고 이곳에서 제가 하는 일이 좋았어요. 사실 살면서 제가 누군가의 변화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요.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로부터 느껴졌어요. 집에 무슨 일이 있어도 선생님 만나기를 꺼렸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려움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교육 코디네이터 선생님을 찾습니다.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주저없이 선생님을 찾아가 고민을 나눠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역 주민들도 자주 학교를 찾아오셔서 또 도울 일이 없는지를 살피시고요. 우리는 할 수 없다고, 그러니 그냥 와서 도와달라고 이야기하던 분들이 스스로 변화를 이야기하며 또 다른 변화를 만들기 위해 열심을 내는 모습을 볼 땐 정말 벅찼습니다. 결국 저는 이 변화를 직접 보기 위해 이곳에 머물렀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Q8. 마지막으로 파견을 마치며 하고 싶은 말, 느낀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사람들은 가끔 자신이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자신의 참여가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일으킬지 같은 거 말이에요. GPC를 후원해주고 계신 분들 중에는 처음에 적은 금액이라 망설이시던 분들도 계셨어요. 그러나 그 분들의 후원이 모여 꼭 필요한 가정에 쌀이 전해지고, 아이들이 계속 학교도 다닐 수 있었던 거거든요.
긴 시간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느낀 점은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뚝딱하고 생기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었어요. 컵에 물이 가득 차도 표면장력 때문에 물이 바로 넘치지는 않잖아요. 그렇지만 거기에 한 방울 한 방울 더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표면장력을 무너트리는 순간이 오고, 그때부터는 물이 넘쳐흐르죠.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항상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보니 가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이 어쩌면 물이 넘치기 바로 직전의 순간일지 몰라요. 우리의 한 방울이 더해져서 한 가정이 일어서고, 아이들에게 꿈꿀 기회가 생기고 더 나아가 이 사회가 변할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 이웃들에게 그 값진 한 방울을 흘려 보내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캄보디아지부 파견 직원, 그녀를 만나다!
▲2024 사례 공유 세미나에서 Prey Khpous 중학교 교장선생님과
안녕하세요? 태화복지재단 캄보디아지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나래입니다. 2022년 3월에 봉사단원으로 처음 캄보디아지부에 왔고 현재는 커뮤니케이터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올 12월에 약 3년 간의 파견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커뮤니케이터는 한국에 있는 본부와 캄보디아지부의 소통을 돕는 역할을 해요. 지부가 해외에 있다보니 본부에서 사업을 모니터링하고 운영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면 현지 사정으로 인해 일정이 변경되거나 지연될 경우 그 이유는 현지에서만 확인이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현장에서 프로그램이 계획한 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앞으로 어떤 부분에 대해서 보완이 필요한지 확인해서 본부에 전달하고 함께 논의하는 일을 합니다.
사실 저는 2021년 봉사단에 선정되었었어요. 그러나 코로나로 파견을 나가지 못하게 되었지요. 🥲 1년의 기다림 끝에 2022년에 다시 지원해서 결국 캄보디아에 나갈 수 있었는데요, 그때 저는 드디어 현장으로 갈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2022년, 아이들과 첫 미술 수업을 마치고
과장을 조금 보태서 파견 생활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어요.
저는 제가 맡게 될 ‘역할’에 더 관심이 있었거든요. 이곳에서 학교-지역사회 교육복지 네트워크 사업의 성과관리를 지원하고 있어요. 정말 이 사업이 의미 있었는지, 효과가 있었는지 보여주려면 납득할만한 근거들이 필요하잖아요. 문서든, 사진이든요! 이것을 성과지표라고 하는데 저는 이 성과지표를 모으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성과지표 중에는 숫자나 수치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어요. 이게 전부가 될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 어떤 활동에 참여하는 횟수가 높다면 그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높다고 보는 거죠. 그렇다 보니 어느새 중도탈락 예방활동 참여 횟수라든지, 지역사회의 교육 참여 인원 수라든지 이런 숫자에 점점 더 신경을 쓰게 됐어요.
어느 날, 지금까지 교육 코디네이터가 활동을 몇 번 하셨는지 세어보는데 유독 한 학교의 교육 코디네이터 활동 횟수가 저조한 거예요. 저는 그게 단순히 활동에 대한 열정이나 관심이 부족해서라고만 생각했죠. 그런데 학교에 직접 방문해서 알게 된 사실은 그 학교에 교장선생님과 교육 코디네이터를 포함해서 교사가 고작 9명이라는 거예요. 전교생은 300명이 넘는데도 말이에요. 순간 그 역할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현장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숫자에만 매몰되었던 저를 발견했어요.
하지만 그 상황을 알고 나니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보였어요.
어떤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냐면요, 교육 코디네이터예요. 교육 코디네이터란, 지역사회와의 협력과 네트워킹을 전담하는 학교 내 핵심 수행인력인데요. 캄보디아에서는 학교사회복지라는 개념이 생소하다 보니 교육 코디네이터 선생님들께서 처음에는 지역사회 내 자원을 발굴하거나 연계하는 것을 어려워하셨어요. 지역사회 협력의 필요성도 잘 느끼지 못하셨고요. 그러나 캄보디아지부에서 제공하는 역량강화교육을 통해 지역사회 협력의 중요성을 이해하시고부터는 적극적으로 바뀌셨어요. 예산, 인력 등 학교가 가진 자원에는 한계가 있지만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신 거예요. 한 교육 코디네이터 선생님은 교육 이후 지역 내에 어떤 자원이 있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시다가 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직접 경찰서랑 보건소까지 방문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학교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느껴졌어요.
*학교-지역사회 교육복지 네트워크 사업이란?
학생이 겪는 어려움은 학생 개인뿐 아니라, 가정, 학교 그리고 지역사회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에 지역사회의 참여를 통해 저소득층 가정 학생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나 노후한 학교 시설환경 개선 등 학교에서 지원하기 어려운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에 접근 및 해결함으로써 학생의 교육참여기회를 증진하고 교육복지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사람들은 지역주민들이에요. 부모님께서 이혼하시고 어머니는 일을 하기 위해 태국으로 떠나시면서 혼자 살고 있는 학생이 있었어요. 비록 상황은 어렵지만 공부에 대한 열의도 높고 성적도 좋았지요. 그런데 집이랑 먼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거예요. 많은 학생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통학하는데 이 학생은 등교를 위한 차편이 없었거든요. 교육 코디네이터 선생님은 이 사실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후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온 마을에 퍼졌어요. 그 중 SNS에 글을 올려 소식을 공유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 아이에게 오토바이를 후원하고 싶다는 후원자를 만날 수 있었고, 아이는 통학에 필요한 오토바이를 선물 받았습니다. 학생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학교 혹은 그 가정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보지 않고 지역주민으로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모습은 정말 인상 깊었어요.
정답은 없지만, 파견자가 ‘내가 무언갈 해야지’, 혹은 ‘내 손으로 많은 것을 바꿔야지’ 생각하면 힘든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변화가 지속될 수 있을지도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고요. 이들이 정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들이 변화를 만드는데 함께 할 수 있도록 우리는 열심히 도와야죠. 파견 생활은 제게 그걸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어요.
▲학교시설환경 개선 공사에 대해 나누고 있는 교육 코디네이터와 학교 교사의 모습
지역사회 후원으로 학교 화장실을 증설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캄보디아는 학교에 대한 정부예산이 크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정부지원금 만으로 학교를 운영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학교 시설환경이 노후되어 있거나 시설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더라도 개선이 쉽지 않아요. 그래서 캄보디아지부는 학교 시설환경 개선을 위한 공사비용을 지원했어요. 비만 오면 물에 잠겨 학생들이 통학에 어려움을 겪던 학교는 통학로를 새로 깔기로 했어요. 외부로부터 학생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무너져 가는 담벼락을 허물고 튼튼한 담을 새로 짓겠다고 한 학교도 있었고요.
대신 학교의 책임의식을 고취시키고 지역사회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전체 공사비용의 10%는 학교 및 지역사회에서 분담하기로 했죠. 다행히 학교와 지역사회가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동의해주신 덕분에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담벼락을 새로 짓고 있는 모습
한 학교는 화장실 수가 부족해서 새로 화장실을 짓기로 계획했어요. 모금을 진행하는데 학부모 및 지역주민으로 구성된 학교지원위원회 분들이 정말 열성적으로 모금활동을 하셨어요. 직접 후원도 하시고 SNS를 통해 후원 홍보글을 공유하는 등 아주 적극적이셨죠. 그 결과 학교 동문들을 비롯해서 지역사회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후원에 동참하셨고, 공사비용의 약 40%를 지역사회에서 후원 받을 수 있었어요. 덕분에 처음 계획한 것보다 훨씬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깔끔한 화장실이 지어졌습니다.
처음엔 학교에 화장실이 부족한 게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이랑 무슨 상관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남학생의 경우 정 급하면 뒤뜰에 가서 볼일을 보기도 하지만 여학생들은 그마저도 어려워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집에 가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 중에는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도 있어요. 사소해 보였던 이유가 사실은 사소하지 않았던 거죠. 아이들의 학습 환경에 관심이 많은 지역주민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그 결과 새로 지어진 화장실을 보는데 왠지 울컥하더라고요. 제가 이곳에서 일하면서 보람을 느낀 순간이기도 합니다.
▲학교시설공사 관련 후원 홍보글을 게재한 학교운영위원회 부위원장 SNS
▲공사가 완공된 후 화장실 사진
캄보디아 사람들은 음식에 설탕을 따로 추가해서 먹을 만큼 단 음식을 좋아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캄보디아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당도를 설정할 수 있어요. 어디에서 어떤 음료를 주문하든지요! 저는 늘 50% 정도로 주문을 했었는데요, 잘 들어보니 저희 직원들은 ‘톰아다’라는 표현을 쓰더라고요. 이게 캄보디아어로 보통이라는 뜻이래요.
그 이후로 음료를 주문할 때는 늘 당도를 ‘톰아다’로 해 달라고 주문했었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궁금해져서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 "톰아다는 몇 퍼센트 정도를 말하는 거냐"고 물었어요. 100퍼센트라는 거에요. 저는 너무 놀라서 "보통인데 어떻게 100퍼센트일 수 있냐"고 물으니 최대 200퍼센트까지 주문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쩐지 아메리카노를 먹는 저에게 늘 한국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다들 쓰게 먹냐고 묻더라니!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이런 순간들이 저의 파견생활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
▲카페 메뉴판 사진
또 다른 에피소드는, 제가 한식에 진심인 사람이라는 것을 파견 와서 알았어요. 익숙한 것에 속아 소중한 것을 잃지 말라고 했건만.. 늘 곁에 있어서 소중함을 잘 몰랐던 거죠.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별로 없었고 집에서 해 먹는 것도 사 먹는 것과 맛이 다르잖아요. 그렇게 한식이 그리워질 때쯤 직원들이 점심에 Korean spicy noodle을 먹으러 가자는 거에요! 음식 앞에 Korean이 붙은 것만으로도 너무 반가워서 냉큼 따라갔죠. 한국의 라면 맛을 상상하며 잔뜩 기대에 부풀어서 첫 술을 뜬 순간 !!!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 국물은 너무 달큰했고 코 끝에 맴도는 이 묘한 향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도무지 한국 라면 맛이라고는 할 수 없는 맛에 설명할 수 없는 괜히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앞에 Korean은 왜 붙인건지! 나중엔 그 맛에도 익숙해져서 야무지게 라임까지 뿌려 먹게 되었지만 아직도 처음 맛본 날의 충격은 잊지 못합니다. 🤣
▲정작 한국인에게는 낯선 Korean spicy noodle
오래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힘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처음 올 때까지만 해도 제가 봉사단원 기간을 연장하게 될지 몰랐고, 지금도 여전히 제가 캄보디아에 3년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요. 부끄럽지만 엄청난 소명 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그러나 저는 이곳 사람들이 좋았고 이곳에서 제가 하는 일이 좋았어요. 사실 살면서 제가 누군가의 변화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어요.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로부터 느껴졌어요. 집에 무슨 일이 있어도 선생님 만나기를 꺼렸던 아이들이 이제는 어려움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교육 코디네이터 선생님을 찾습니다.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주저없이 선생님을 찾아가 고민을 나눠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역 주민들도 자주 학교를 찾아오셔서 또 도울 일이 없는지를 살피시고요. 우리는 할 수 없다고, 그러니 그냥 와서 도와달라고 이야기하던 분들이 스스로 변화를 이야기하며 또 다른 변화를 만들기 위해 열심을 내는 모습을 볼 땐 정말 벅찼습니다. 결국 저는 이 변화를 직접 보기 위해 이곳에 머물렀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자신이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자신의 참여가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일으킬지 같은 거 말이에요. GPC를 후원해주고 계신 분들 중에는 처음에 적은 금액이라 망설이시던 분들도 계셨어요. 그러나 그 분들의 후원이 모여 꼭 필요한 가정에 쌀이 전해지고, 아이들이 계속 학교도 다닐 수 있었던 거거든요.
긴 시간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느낀 점은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뚝딱하고 생기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었어요. 컵에 물이 가득 차도 표면장력 때문에 물이 바로 넘치지는 않잖아요. 그렇지만 거기에 한 방울 한 방울 더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표면장력을 무너트리는 순간이 오고, 그때부터는 물이 넘쳐흐르죠.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항상 결과가 바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보니 가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이 어쩌면 물이 넘치기 바로 직전의 순간일지 몰라요. 우리의 한 방울이 더해져서 한 가정이 일어서고, 아이들에게 꿈꿀 기회가 생기고 더 나아가 이 사회가 변할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 이웃들에게 그 값진 한 방울을 흘려 보내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